25/26시즌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우승 (22년 기다림, 철벽 수비, 세트피스)

22년 만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맨시티가 본머스와 비기는 순간, 승점 4점 차로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확정됐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단순한 축구 결과가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승 트로피


22년 기다림 끝에 터진 우승, 그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

2003-04 시즌,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무패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 시즌을 이끈 팀을 인빈시블스(The Invincibles)라고 부릅니다. 인빈시블스란 리그 38경기를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한 팀을 가리키는 말로,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그 이후 아스날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립으로 인한 재정 압박, 핵심 선수들의 잇따른 이탈,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의 막대한 자본 앞에서 오랜 암흑기를 견뎌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2025-26 시즌 우승을 이끈 선수들 상당수가 2004년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겨우 걸음마를 뗀 나이였다는 점입니다. 반면 미켈 아르테타 감독은 그해 22세의 레인저스 소속 미드필더였습니다. 상대 구단 소속 선수로서 바라봤던 아스날의 전성기를, 이제 감독으로서 직접 재현해냈다는 사실이 저는 개인적으로 꽤 인상 깊었습니다. 과거 사진 속 풋풋한 아르테타와 지금의 날카로운 눈빛을 비교하면, 22년이라는 세월이 그에게 얼마나 무겁게 쌓여 있었는지가 느껴집니다.

이번 우승을 두고 "맨시티가 자멸한 덕분 아니냐"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스날은 시즌 내내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을 보여줬고, 리그 최종 승점에서 4점이라는 격차를 스스로 만들어냈습니다. 맨시티의 피로 누적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승의 본질을 흐리지는 않습니다.

철벽 수비가 만든 기초, 리그 최소 실점 27골의 비밀

이번 시즌 아스날 우승의 가장 단단한 뿌리는 수비진이었습니다. 리그 최소 실점(27실점)이라는 수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이건 시즌 내내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경기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 바로 이 수비 안정성이었는데, 특히 윌리엄 살리바와 가브리엘 마갈량이스로 이뤄진 중앙 수비 라인은 리그 전체에서 가장 견고한 조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에 골키퍼 다비드 라야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야는 단순히 슈팅을 막는 골키퍼가 아니라, 스위퍼-키퍼(Sweeper-Keeper) 역할을 소화하는 선수입니다. 스위퍼-키퍼란 페널티 박스 밖까지 적극적으로 나와 수비 라인 뒤 공간을 커버하는 현대 축구의 골키퍼 유형으로, 아스날처럼 높은 수비 라인을 유지하는 팀에서는 필수적인 포지션입니다. 라야의 선방과 공간 커버 능력이 없었다면 27실점이라는 수치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스날의 수비 전술에는 프레싱(Pressing)이라는 개념도 핵심적으로 작동했습니다. 프레싱이란 상대 진영에서부터 공격적으로 볼을 압박해 상대의 빌드업(Build-up) 자체를 차단하는 전술입니다. 빌드업이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조직적으로 공을 연결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아스날은 이 두 가지를 결합해 상대가 편하게 공을 소유하는 상황을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전술은 선수 개개인의 체력과 전술 이해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즌 후반에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런데 아스날은 끝까지 버텼습니다.

세트피스 전술, 우승의 숨겨진 열쇠

아스날의 이번 우승에서 가장 저평가된 요소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세트피스(Set-piece)를 고릅니다. 세트피스란 코너킥, 프리 킥, 스로인처럼 경기가 일시 정지된 뒤 재개되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플레이를 말합니다. 이번 시즌 아스날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만 무려 36골을 기록했고, 그중 코너킥 득점이 27골에 달했습니다.

이 수치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감이 잘 안 올 수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세트피스 득점 능력이 좋다고 알려진 팀들도 보통 코너킥 득점은 시즌 전체에서 10골 안팎에 머무릅니다. 27골이라는 건 거의 두 배 이상의 수치입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전담 세트피스 코치의 역할이 컸습니다. 단순히 선수가 키가 크고 점프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 수비 블록의 허점을 분석하고 매 경기 다른 루트를 설계해 공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실제로 경기를 보면 코너킥 때마다 움직임 패턴이 달라서, "이번엔 또 어떻게 들어오나" 하고 기대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전술적 디테일을 두고 "결국 세트피스에 과도하게 의존한 거 아니냐"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세트피스 득점이 많다는 건 약점이 아니라 강점입니다. 오픈 플레이로 득점이 어려운 경기에서 세트피스로 결판을 낼 수 있다는 건, 팀에 또 다른 무기가 하나 더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스날은 오픈 플레이 득점력도 갖추면서 세트피스까지 강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은 팀이 우승하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1. 세트피스 전체 득점: 36골 (리그 최강 수준)
  2. 코너킥 득점: 27골 (리그 전체 압도적 1위)
  3. 리그 최소 실점: 27실점 (수비와 공격 모두에서 리그 최고 효율)
  4. 최종 승점 차이: 맨시티 대비 4점 우위로 우승 확정

프리미어리그 공식 통계에 따르면(출처: Premier League 공식 홈페이지),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 효율은 현대 축구에서 승점 획득에 갈수록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스날은 그 흐름을 가장 잘 읽은 팀이었습니다.

데클란 라이스의 "아직 안 끝났어", 이 한 마디가 시즌을 바꿨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아스날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고르라면, 저는 맨시티전 패배 직후 데클란 라이스가 마르틴 외데고르에게 다가가 "아직 안 끝났어(It's not over)"라고 말한 순간을 꼽겠습니다. 그 짧은 한 마디가 왜 이렇게 오래 남았냐면, 라이스가 그 말을 실제로 행동으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라이스는 그 이후 번리전을 비롯한 여러 경기에서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해냈습니다. 볼 탈취, 위기 차단, 공격 전환 연결까지 혼자서 몇 가지 역할을 동시에 소화했습니다. 저는 이 선수를 보면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Box-to-box Midfielder)가 진짜 뭔지"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란 자기 팀 페널티 박스에서 상대 팀 페널티 박스까지 전 구역을 누비며 수비와 공격을 모두 책임지는 미드필더 유형입니다. 라이스는 그 정의를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스포츠가 단순한 공놀이를 넘어서는 순간은 바로 이런 스토리가 쌓일 때입니다. 골 득실 면에서 불리했던 상황, 4연속 준우승의 심리적 압박, 맨시티라는 넘기 어려운 벽.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뚫어낸 건 전술만이 아니라 라이스처럼 이 팀에 뭔가를 불어넣는 선수들의 멘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멘탈이 공동체 전체로 퍼졌고, 결국 팀 전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만약 이번 시즌에도 우승을 놓쳤다면 어땠을까요? 4연속 준우승이라는 기록은 선수단 정신력과 동기 부여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을 겁니다. 외데고르, 사카, 살리바 같은 핵심 선수들의 이적 가능성도 지금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고, 아르테타 감독 체제에 대한 의구심도 다시 커졌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우승은 단순한 트로피 하나가 아니라, 구단 전체의 방향을 확정 지은 사건이었습니다. 아스날 에서도 이번 우승이 단순한 시즌 결과를 넘어 아스날의 새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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