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과르디올라감독 퇴임 (업적, 전술혁신, 춘추전국시대)
솔직히 저는 과르디올라가 이렇게 빨리 맨체스터 시티를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2027년 6월까지였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시즌을 끝으로 10년간의 시티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소식이 나왔고, 아스톤 빌라와의 홈 최종전이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시대가 정말로 끝나고 있다는 실감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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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지시하는 펩 출처:포토뉴스 |
제가 처음 과르디올라를 알았을 때
제가 과르디올라라는 이름을 처음 제대로 의식한 건 박지성 선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섰을 때였습니다. 에투와 메시에게 골을 내주며 맨유가 졌던 그 경기, 당시 저는 결과보다 바르셀로나가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에 더 눈이 갔습니다. 공을 저렇게 지배하면서 경기를 끝낼 수 있구나 싶었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저는 그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tiki-taka) 축구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티키타카란 짧은 패스를 빠르게 반복하면서 점유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전술 스타일로, 상대팀이 공을 아예 만지지도 못하게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보는 재미가 없다고 느낀 거였죠. 경기가 아니라 일방적인 전시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어느 팀을 내보낼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 시절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를 고를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제 짧은 축구 인생에서 충격적인 팀이었습니다.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라는 선수들이 있었다 해도, 그걸 그렇게 돌아가게 만든 건 결국 과르디올라였으니까요.
바이에른 뮌헨을 거쳐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똑같았습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어디서나 독주를 하나 싶어서, 솔직히 "징글징글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맨시티에서의 10시즌 동안 메이저 트로피를 20개나 들어올렸다는 기록이 그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바꿔놓은 전술의 판도
제가 과르디올라를 단순히 "우승을 많이 한 감독" 정도로 봤다가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건, 축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사람은 전술적 패러다임(tactical paradigm) 자체를 바꾼 감독이었습니다. 전술적 패러다임이란 특정 시대에 축구가 돌아가는 전반적인 틀과 흐름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축구라는 판의 판도를 그가 이끌었다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버티드 풀백(inverted fullback)입니다. 인버티드 풀백이란 측면 수비수가 바깥쪽에서 공격하는 대신, 중앙으로 파고들어 미드필더처럼 활약하는 역할을 뜻합니다. 진첸코나 칸셀루 같은 선수들이 이 방식으로 기용됐죠. 그런데 과르디올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른 팀들이 인버티드 풀백을 따라 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이미 인버티드 센터백(inverted centrebreak)이라는 개념을 꺼내 들었습니다.
인버티드 센터백이란 중앙 수비수가 수비라인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 칸 정도 앞으로 올라와 미드필드 구역에서 빌드업에 참여하는 역할입니다. 풀백이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면 수비 복귀 시 대각선 경로가 필요하지만, 센터백이 직선으로 앞에 위치하면 복귀 거리가 훨씬 짧아지는 효율이 생깁니다. 이 모델에 딱 맞는 선수가 바로 존 스톤스였고, 그 결과가 22-23 시즌 트레블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그 시즌 경기들을 다시 돌려보면서 느낀 건, 스톤스가 중앙에서 공을 받는 그 찰나의 타이밍에 상대 수비 전체가 흔들리더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인버티드 센터백을 저렇게 완성도 높게 구현한 팀은 그 시절 맨시티가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지션 플레이(positional play)의 보편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포지션 플레이란 선수에게 고정된 역할을 부여하는 대신, 구역(zone) 개념으로 팀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왼쪽 풀백이 전방으로 올라가면 그 순간 왼쪽 윙어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반대로 윙어가 내려오면 풀백처럼 기능하는 겁니다. 역할이 아니라 위치가 기준인 축구죠. 이 개념을 전 세계적으로 퍼뜨린 장본인이 과르디올라입니다.
실제로 프리미어 리그 공식 통계를 들여다보면,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2016-17 시즌 이후 리그 전체의 평균 패스 정확도가 꾸준히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키퍼에게 빌드업(build-up) 능력을 요구하게 된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빌드업이란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공을 연결하며 공격의 시작점을 만드는 과정을 뜻합니다. 센터백의 발밑 기술이 선수 평가 지표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과르디올라가 가져온 변화입니다.
숫자로 보는 10년의 업적
맨체스터 시티에서 과르디올라가 이룬 것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프리미어 리그 우승 6회 (2017-18, 2018-19, 2020-21, 2021-22, 2022-23, 2023-24)
- FA컵 우승 3회, 리그컵 우승 4회, 커뮤니티 실드 3회
- 챔피언스 리그,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 각 1회
- 2017-18 시즌 승점 100점 달성 — 프리미어 리그 38경기 체제 도입 이후 유일한 기록
-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초 4시즌 연속 우승 (2020-21 ~ 2023-24)
- 트레블 2회 달성 — 전 세계 감독 역사상 루이스 엔리케와 함께 단 두 명만 보유한 기록
이 가운데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건 4연속 우승입니다. 22-23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하고 나면, 솔직히 거기서 한 템포 쉬어가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하얗게 불태운 다음 시즌에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건 선수도 감독도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23-24 시즌에 로드리와 포든을 앞세워 또 우승을 만들어낸 걸 보고 저는 이 사람이 단순한 전술가가 아니라 동기부여의 전문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다 우승 감독인 퍼거슨과 비교하는 논쟁도 있지만, 프리미어 리그 한정으로는 저는 아직 퍼거슨이 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 세계 리그를 포함한 커리어 전체로 놓고 보면, 과르디올라는 역대 최고의 감독 논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입니다. 트랜스퍼마르크트의 과르디올라 커리어 기록을 보면, 바르셀로나 4시즌 중 3회 우승, 바이에른 뮌헨 3시즌 중 3회 우승, 맨시티 10시즌 중 6회 이상 우승이라는 수치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리그 커리어 최저 순위가 3위라는 사실만 봐도, 이 커리어가 얼마나 균일하고 압도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로웠습니다. 과르디올라가 스톡포트 카운티 대 포트 베일이라는 3부 리그 경기를 관전하러 갔을 때, 왜 파리와 바이에른 경기 대신 저 경기를 봤냐는 질문에 "다음 시즌엔 소파에서 바이에른 경기를 볼 시간이 많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때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 진심이 담긴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르디올라가 떠난 자리, 이제 어떻게 되나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과르디올라뿐 아니라 베르나르두 실바, 존 스톤스 같은 핵심 자원들까지 이탈이 겹칩니다. 지난 시즌에도 귄도안, 워커, 에데르송 등 트레블 멤버들이 대거 팀을 떠났는데, 이번엔 거기에 감독까지 바뀌는 상황입니다. 선수가 떠나는 것과 감독이 바뀌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시티의 경기 스타일 자체가 과르디올라와 함께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구단 브랜딩 전체가 재정의되는 시점이 왔다고 봐야 합니다.
후임으로는 마레스카 감독이 유력하게 거론됩니다. 마레스카가 지난 시즌 첼시 재임 중 맨시티와 접촉한 이력이 있었고,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첼시와 결별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아직 공식 확정은 아니지만, 현재 시티 내부에서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는 후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