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장 (복합시설, 개폐식 지붕, 사용자 경험)
경기 중간에 핫도그 사러 갔다가 결정적인 골 장면을 놓친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잠실 경기장에서 그걸 두 번이나 겪고 나서 '경기장 설계가 대체 왜 이 모양이지'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미국·캐나다·멕시코 16개 도시의 경기장을 살펴보면서, 그 답을 꽤 구체적으로 찾게 됐습니다.
SOFI 스타디움
복합시설화: 경기장이 쇼핑몰이 된다는 것의 의미
경기장 설계에서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키워드가 믹스드 유즈(Mixed-Use)입니다. 믹스드 유즈란 단일 기능 건물 대신 주거·상업·문화 등 여러 기능을 한 공간에 묶어 운영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스타디움에 이 개념이 들어오면서 경기장은 단순히 스포츠를 보는 곳에서,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이 몰리는 복합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신세계가 청라에 짓고 있는 SSG 랜더스 구장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야구장에 스타필드, 호텔, 워터파크까지 한 덩어리로 묶는 방식인데, 이 프로젝트 관계자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호텔 방 창문에서 경기장 그라운드가 보이게 설계를 했는데,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공연 아티스트가 오면 시큐리티 문제로 그 창문을 전부 가려달라고 요청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가장 전망 좋은 객실이 공연 기간 동안 쓸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이 문제를 풀려면 공연 준비 기간에는 창문 앞에 차폐막이 자동으로 내려오거나, 아예 해당 객실을 공연팀에게 통째로 판매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공연 티켓값이 포함된 프리미엄 객실로 파는 거죠. 복합시설화가 가져오는 건 수익 기회만이 아니라 이런 복잡한 운영 문제도 함께라는 것, 설계 단계에서 미리 예측하지 않으면 나중에 꼬입니다.
런던의 O2 아레나가 좋은 참고 사례입니다.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이 공간은 원래 밀레니엄 돔이라는 이름의 전시장으로 만들어졌는데 활용도가 거의 없어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이후 공연 아레나로 리모델링하고 지하철 노스 그리니치역을 바로 연결하면서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교통 접근성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유럽 최대 실내 공연장 중 하나가 된 겁니다(출처: The O2 공식 사이트).
개폐식 지붕: 구조적 도전과 경제적 타당성
이번에 살펴본 16개 경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술적 차이는 지붕의 유무와 개폐 방식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경기장들은 대부분 지붕이 없고, 2010년대 이후에 지어진 곳들은 거의 다 개폐식 지붕을 달고 있습니다. 단순히 비를 막으려는 게 아닙니다.
지붕이 없으면 그 공간은 스타디움으로만 쓰입니다. 반면 밀폐 가능한 지붕이 있으면 아레나(Arena), 즉 실내 대형 공연장으로도 전환할 수 있습니다. 5만 명이 들어가는 공간을 1년에 경기 몇 번만으로 유지하기에는 건설비와 운영비가 너무 큽니다. 공연을 유치해야 수지가 맞습니다.
AT&T 스타디움이 있는 댈러스는 완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돔 구조물이었습니다.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HD 비디오 디스플레이를 달았는데, 가로 49m, 세로 22m짜리 패널이 양면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런 대형 디스플레이 무게만 200톤에 달하기 때문에 트러스(Truss), 즉 삼각형 프레임을 반복 결합해 만드는 구조 시스템에 엄청난 하중이 걸립니다. 트러스란 개별 부재의 강도가 약하더라도 삼각형 조합으로 큰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 방식입니다.
LA의 소파이 스타디움은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줍니다. 지붕 개폐 없이 ETFE 캐노피를 얹었는데, ETFE(에틸렌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란 반투명 불소계 필름 소재로, 가볍고 빛을 투과시키면서도 내구성이 강해 최근 대형 건축물 외피에 많이 쓰이는 재료입니다. 이 지붕 아래 삼성이 제작한 세계 최초 타원형 양면 인피니티 스크린이 무게 1,000톤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구조체가 얼마나 가볍고 슬릭하게 보이는지, 처음 봤을 때 저도 1,000톤이 저 안에 들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번 16개 경기장의 지붕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개폐식 트러스 슬라이딩 방식 — 댈러스 AT&T 스타디움, 휴스턴 NRG 스타디움 등 고온 지역에 집중
- ETFE·멤브레인 캐노피 고정형 — LA 소파이 스타디움, 애틀랜타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
- 아치 구조 슬라이딩 방식 — 시애틀 루멘 필드, 경기장 긴 변 방향으로 아치를 걸어 구조적 난이도가 가장 높음
- 케이블 지지 개폐식 — 밴쿠버 BC 플레이스, 공기압 돔 붕괴 후 안전 보강형으로 교체
- 지붕 없음 — 보스턴 질레트 스타디움, 뉴욕·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등 2000년대 이전 구장
시애틀 방식이 구조적으로 가장 어렵습니다. 짧은 변이 아니라 긴 변 방향으로 아치를 걸어야 하니 스팬(Span), 즉 지지점 사이의 거리가 엄청나게 길어집니다. 그만큼 처짐과 하중 계산이 까다롭고, 공사비도 높습니다. 대신 지붕이 열렸을 때 양쪽 사이드 관람석에서 하늘이 완전히 뻥 뚫려 보이는 경험은 다른 방식으로는 낼 수 없습니다.
사용자 경험 설계: 화장실 동선 하나가 매출을 바꾼다
건축 설계를 공부하거나 실무를 하다 보면 '동선(Circulation)'이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동선이란 사람이 공간 안에서 이동하는 경로를 뜻하는데, 경기장에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저는 미국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경기장 구조는 좌석이 위로 쌓이고, 그 하부 공간에 매점이 들어가 있습니다. 간식을 사려면 좌석을 벗어나서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사는 동안 경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미 골이 들어가 있는 건 흔한 일입니다.
최근 지어진 경기장들은 구성 자체가 다릅니다. 좌석 블록의 꼭대기, 즉 맨 위 복도 바로 뒤쪽에 식음료 공간을 배치합니다. 핫도그를 주문하면서 고개만 돌리면 그라운드가 보입니다. 환호 소리가 나면 즉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게 F&B(Food and Beverage) 배치의 핵심인데, F&B란 스타디움 내 식음료 시설 전체를 통칭하는 운영 용어입니다.
화장실 동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경기장에서 화장실을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세면대가 없는 겁니다. 볼일을 다 보고 두리번거리니 반대편 끝에 세면대가 있었습니다. 원웨이 동선, 즉 들어온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설계한 겁니다. 손을 씻고 나오는 출구 바로 앞이 푸드코트였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한 겁니다. 이게 되게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수만 명이 드나드는 공간에서 이 동선 하나가 F&B 매출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삿포로의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니혼햄 파이터스 홈구장)가 이 개념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곳입니다. 제가 직접 가봤는데, 천연 잔디 그라운드를 실내에서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천연 잔디가 실내에 깔려 있다는 것만으로 그 공간은 온라인 쇼핑이 대체할 수 없는 감각적 경험이 됩니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그 잔디밭을 보러 옵니다. 이게 어트랙션(Attraction), 즉 사람을 끌어당기는 핵심 요소가 된 겁니다.
스타디움 수익 구조: 이름값부터 VIP 룸까지
경기장 하나를 짓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단순히 건설비로 끝나지 않습니다. 운영비, 유지보수비, 인건비가 매년 수백억씩 나갑니다. 그래서 경기장 수익 모델은 설계 단계부터 같이 구상해야 합니다.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경기장 명칭 사용권에 대한 스폰서 비용을 받음으로써 경기장 유지 및 관리비를 충당합니다. 일반 좌석과 차별화된 고가의 VIP 룸을 법인에 시즌 단위로 임대합니다. 법인은 이를 티켓 마케팅 및 클라이언트 접대용으로 활용하며, 경기장 운영 측은 이를 통해 안정적인 고수익을 창출합니다. 경기장을 단독으로 활용하지 않고, 호텔, 쇼핑몰, 워터파크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복합 시설화합니다. 이를 통해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방문하여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개폐식 지붕 등을 설치하여 실내 공연장이나 아레나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스포츠 경기 이외의 공연 및 이벤트 개최를 통한 수익을 발생시킵니다. 경기 중에도 관람객이 음식을 구매하러 갔을 때 경기를 놓치지 않도록 식당을 배치하거나, 화장실과 푸드코트를 연결하는 등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동선을 설계하여 부가 수익을 높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