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돔구장 (3만석 논란, 수익성, 인프라 전략)

잠실 야구장이 45년 만에 철거되고 돔구장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꽤 설렜습니다. 그런데 3만 석이라는 규모가 공개되자 주변 야구 팬들 반응이 확 식더군요. 저도 처음엔 "왜 이렇게 작게 짓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파고들수록 이게 단순한 규모 욕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야구장


3만 석, 그냥 작게 지은 게 아니었다

도쿄 돔이 45,000석이고, 인구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작은 타이완조차 4만 석 규모의 돔구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처음엔 황당했습니다. 프로야구 연간 관중이 1,200만 명을 넘는 나라에서, 서울 한복판에 짓는 돔이 고작 3만 석이라니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 결정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번 잠실 야구장 재건축은 순수한 야구장 신축 사업이 아닙니다. 잠실 종합운동장 일대를 마이스(MICE) 복합 단지로 전환하는 대형 도시개발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마이스(MICE)란 회의(Meeting), 인센티브 여행(Incentive Trip), 컨벤션(Convention), 전시(Exhibition)를 묶어 부르는 개념으로, 대규모 비즈니스 행사를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호텔, 전시장, 업무 시설이 한 곳에 모인 복합 개발지에 야구장이 끼어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사업 방식도 중요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부채납(寄附採納)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기부채납이란 민간 사업자가 공공시설을 건설한 뒤 해당 시설을 국가나 지자체에 무상으로 넘기는 대신, 나머지 부지에서 수익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는 방식입니다. 즉, 한화 컨소시엄 입장에서는 컨벤션이나 호텔에서 번 돈으로 야구장 건설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돔을 크게 지을수록 건설비가 올라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화 컨소시엄이 떠안아야 하니 규모를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돔구장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진짜 이유

규모 논란을 이해하려면 돔구장이 왜 수익 내기 까다로운 시설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제가 고척 스카이돔에 몇 번 가봤는데, 시설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4층 좌석에서 보이는 시야는 좁고 경사는 가파른 데다, 주변에 먹을 곳 하나 제대로 없고 주차도 전쟁입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보다 더 놀라운 건 운영 수지였습니다.

고척 스카이돔은 16,000석 규모임에도 연간 150일 정도밖에 운영되지 않습니다. 유지·관리 비용은 꾸준히 나가는데 활용 일수가 이 정도라면, 흑자라고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공공이 지어서 임대 방식으로 운영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지만, 민간이 지었다면 투자금 회수 자체가 막막한 구조입니다.

일반 야외 경기장과 비교했을 때 돔구장은 건설 원가 자체가 다릅니다. 지붕 구조물, 공조 시스템, 방음 설비 등 기본 스펙부터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거기에 유지관리비까지 더하면, 스포츠 경기만으로는 손익분기점(損益分岐點)을 맞추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손익분기점이란 총 수입과 총 비용이 딱 일치하는 지점, 즉 이익도 손실도 없는 기준선을 뜻합니다. 이 기준선을 넘으려면 리그 경기 외에 콘서트, 기업 행사, 전시회 등을 꾸준히 유치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고척돔이 이미 증명하고 있습니다.

잠실 돔의 3만 석 결정을 단순히 "작게 짓기로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 그나마 감당 가능한 최대치를 선택한 것으로 봅니다. 더 짓고 싶어도 못 짓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아래는 돔구장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들입니다.

  1. 건설비: 일반 야외 경기장 대비 공조·방음·지붕 구조 비용이 대폭 증가합니다.
  2. 유지관리비: 연간 고정 지출이 커서 가동률이 낮으면 적자 구조가 고착됩니다.
  3. 활용 일수: 리그 경기만으로는 연간 150~180일 수준으로 제한됩니다.
  4. 비경기 이벤트 유치 경쟁: 콘서트나 기업 행사는 다른 공연장·전시장과 경쟁해야 합니다.
  5. 접근성: 주차, 대중교통, 주변 편의시설이 방문객 수와 직결됩니다.

정부가 5만 석 돔을 꺼낸 이유

이런 흐름 속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돔구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8억 원 규모의 연구 용역을 시작한다는 내용인데, 파주, 광명, 천안, 청주 등 여러 지역이 유치 의사를 밝히며 경쟁에 나섰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제 경험상 이런 발표는 타이밍을 짚어봐야 합니다. 선거철 공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거든요. 구체적인 부지 선정도, 재원 조달 방안도 없이 "짓겠다"는 선언만 있을 때는 현실화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발표된 내용은 연구 용역을 시작하는 단계이니, 실제 착공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다만 대형 돔 시설의 필요성 자체는 분명합니다. 연간 관중 1,200만 명을 돌파한 KBO 리그의 성장세, 그리고 K-팝(K-POP) 공연의 세계적 수요를 고려하면 국내에 대형 실내 공연·스포츠 복합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해외 아티스트 내한 공연이 티켓팅 전쟁으로 끝나고, K-팝 아티스트들이 아시아 투어를 도쿄나 방콕에서 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국내 대형 돔의 부재입니다. 실제로 국내 공연 산업 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규모보다 중요한 건 주변 인프라다

잠실 돔이 3만 석이든 4만 석이든, 사실 저는 규모 논쟁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어놓고 나서 어떻게 쓸 것인가?"입니다. 고척 스카이돔이 생겼을 때도 기대가 컸는데, 돔 하나만 떡하니 놓이니 주변이 한동안 썰렁했습니다. 경기장 자체보다 그 주변이 어떻게 채워지느냐가 방문객 경험을 좌우한다는 걸 직접 느꼈습니다.

랜드사이드(Landside) 개발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랜드사이드 개발이란 경기장이나 공항 같은 핵심 시설 주변의 상업·문화·교통 인프라를 함께 조성해 방문객의 체류 시간과 소비를 늘리는 전략입니다. 단순히 경기장 안에서만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오기 전부터 가고 나서까지 그 지역에서 소비가 일어나도록 설계하는 접근법입니다. 성공한 해외 돔구장들을 보면 이 랜드사이드 개발이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잠실의 경우 이미 지하철 2호선과 8호선이 교차하고 롯데월드와 스타필드 등 집객 시설이 주변에 있어 기본 조건은 갖춰진 편입니다. 그러나 대단위 마이스 복합 단지가 들어서면 교통 혼잡이나 주차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습니다. 3만 석 규모라도 이 인프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고척돔과 같은 불편함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반대로 규모에만 집착하다가 주변 인프라 없이 큰 돔을 세우는 것도 위험합니다. 지방 도시들이 대형 돔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는데, 단순히 "우리 지역에 생기면 좋겠다"는 열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운영이 어렵습니다. 교통 접근성, 숙박 시설, 상업 생태계가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돔은 그냥 빈 껍데기가 됩니다. 수익성 문제가 있다면 고척돔 사례처럼 공공이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는데, 어느 쪽이든 선택하기 전에 치밀한 수요 예측과 운영 모델 검토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잠실 새 돔구장이 3만 석으로 확정된 것, 그리고 문체부가 더 큰 돔을 추진하겠다는 것, 두 사안을 동시에 보면 국내 스포츠·공연 인프라가 전환점에 와 있다는 게 분명합니다. 저는 규모 논쟁보다 "어디에, 어떻게, 누가 운영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youtu.be/iqjldPZi64Y?si=Ytwy_YJSVwsnyj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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