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FC (울위치 이전, 하이버리, 북런던 더비)
솔직히 저는 아스날이 처음부터 런던 북부 클럽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꽤 오랫동안 몰랐습니다. 빨간 유니폼, 하이버리, 그리고 토트넘과의 악연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파고들수록 이 클럽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재정난이 역사를 바꾸고, 그 역사가 지금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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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어 축구경기 |
울위치에서 시작된 클럽, 그리고 재정난
아스날의 출발점은 런던 남동쪽 울위치(Woolwich)입니다. 19세기 후반, 왕실 무기 제조 시설인 로열 아스날(Royal Arsenal)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1886년 축구 클럽을 창단했습니다. 처음 이름은 다이얼 스퀘어 FC(Dial Square FC)였는데, 이는 해당 작업장에 있던 해시계 모양의 아치형 시계탑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후 같은 해 로열 오크 펍에서 창단식을 열고 로얄 아스날 FC로 개명했습니다.
창단 초기 유니폼은 노팅엄 포레스트(Nottingham Forest) 출신 선수들이 기증한 버건디색 셔츠였습니다. 오늘날 아스날 하면 떠오르는 선명한 레드 컬러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클럽의 색깔 하나에도 이렇게 구체적인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문제는 울위치라는 지역 자체였습니다. 당시 구단의 유일한 수익원은 입장권 수익(Gate Receipt)이었습니다. 게이트 리시트란 경기 당일 관중이 지불하는 입장료 수입을 말하는데, 지금처럼 중계권료나 스폰서십 수익이 없던 시절에는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울위치는 인구가 적고 교통 접근성도 좋지 않아서, 경기를 열어도 관중을 충분히 모으기가 어려웠습니다. 구단 재정은 만성 적자 상태였습니다.
1910년 사업가 헨리 노리스(Henry Norris)가 구단 경영에 합류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노리스는 인구 밀집 지역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경영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스날의 역사 전체를 뒤흔드는 선택이 됩니다.
하이버리 이전이 만들어낸 것들
1913년 아스날은 런던 북부 하이버리(Highbury) 지역으로 연고지를 옮깁니다. 하이버리는 전형적인 주거 밀집 지역으로, 당시 질레스피 로드(Gillespie Road) 역이 있어 외곽에서도 관중이 경기장을 찾기 훨씬 수월했습니다. 제 경험상 런던 지하철(Underground) 노선 접근성이 관중 동원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는, 지금도 런던의 각 구장 위치를 보면 바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도보 5분 거리냐, 30분 거리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연고지 이전 후 구단 명칭에서 '울위치'가 빠지고 아스날 FC(Arsenal FC)로 정식 변경됩니다. 이와 함께 하이버리 구장(Highbury Stadium)은 단순한 경기장을 넘어 클럽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합니다. 이후 허버트 채프먼(Herbert Chapman) 감독이 W-M 포메이션(W-M Formation)을 도입하면서 아스날은 전술적으로도 영국 축구를 이끄는 클럽이 됩니다. W-M 포메이션이란 필드 플레이어를 W자와 M자 형태로 배치하는 대형으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공수 균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후 아르센 벵거(Arsène Wenger) 감독은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서 또 다른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스포츠 과학(Sports Science)을 축구에 접목하여 선수 부상 관리와 식단, 훈련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스포츠 과학이란 생리학, 영양학, 심리학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선수의 퍼포먼스를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분야입니다. 벵거 감독은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 FA컵 7회 우승, 그리고 무패 우승(Invincibles, 2003-04시즌)이라는 기록을 하이버리에서 완성했습니다.
아스날 팬들이 하이버리를 떠올릴 때 단순히 오래된 구장을 그리워하는 게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피 속에 빨간색과 흰색이 흐른다고 표현할 만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팬 문화의 뿌리가 바로 하이버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벵거 감독이 "하이버리는 나의 영혼이다"라고 표현한 것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겁니다.
하이버리 시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허버트 채프먼의 W-M 포메이션 도입으로 전술 혁신을 이끌며 1930년대 리그 3연패 달성
- 아르센 벵거의 스포츠 과학 접목으로 선수 컨디션 관리 방식이 영국 축구 전체에 영향을 줌
- 2003-04시즌 리그 전 경기 무패(Invincibles)라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유일한 기록 수립
- 하이버리를 중심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팬 문화 정착
북런던 더비, 앙숙의 탄생
저는 솔직히 처음에 북런던 더비(North London Derby)가 단순히 지역 라이벌 감정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관계는 감정보다 훨씬 구체적인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아스날이 1913년 하이버리로 이전했을 때, 북런던을 텃밭으로 여기던 토트넘 홋스퍼(Tottenham Hotspur)가 크게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앙숙 관계의 도화선은 1919-1920시즌에 당겨집니다. 당시 풋볼 리그(Football League)는 1부 리그 팀 수를 20개에서 22개로 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늘어난 두 자리 중 한 자리를 어떤 팀에게 줄 것인가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짚으면, 1부 리그 최하위였던 토트넘은 원래대로라면 강등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리그가 팀 수를 늘리면서 잔여 한 자리를 두고 여러 클럽이 투표로 경쟁하게 됩니다. 2부 리그 5위였던 아스날이 이 투표에서 선출되어 1부 리그에 합류했고, 토트넘은 결국 강등됩니다. 이 사건을 두고 "아스날이 헨리 노리스의 로비로 부당하게 승격됐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100년이 넘은 지금 그 진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토트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후 두 팀 사이의 감정은 여러 사건을 거치며 더 깊어집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2001년 솔 캠벨(Sol Campbell)의 이적입니다. 자유 계약(Free Transfer), 즉 계약이 만료된 선수가 이적료 없이 다른 팀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토트넘의 주장 캠벨이 아스날로 건너갔습니다. 팬들 입장에서는 단순한 선수 이동이 아닌 배신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사건은 지금도 북런던 더비 때마다 회자됩니다. 북런던 더비의 역사에 대한 더 자세한 배경은 프리미어리그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팀의 관계는 단순한 지역 라이벌을 넘어, 리그 행정상의 논란과 역사적 사건들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입니다. 아스날 팬과 토트넘 팬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이해하려면 1919년의 그 투표 결과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스날의 역사 전반에 걸친 공식 기록은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스날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 클럽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변곡점이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울위치 노동자들의 창단, 하이버리 이전, 1919년의 논란, 벵거 시대의 영광까지 모두 이어진 맥락입니다. 아스날 팬이라면 울위치 로열 아스날과 하이버리를 직접 방문해보시길 권합니다. 직접 그 장소에 서봐야 숫자나 기록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참고: https://youtu.be/uJPlu1B8f6s?si=agus07-ARDwW3a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