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축구 (조직력, 와일드카드, 이민성 감독)
솔직히 이번 아시안게임 명단 처음 봤을 때 "이 정도면 그냥 우승 확정 아닌가?" 싶었습니다. 유럽파만 아홉 명에 와일드카드도 세 장 다 썼으니까요. 그런데 경기 결과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니 불안감이 오히려 커졌습니다. 선수는 역대 최강인데 팀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바로 이번 대표팀의 핵심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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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경기장 |
선수 자원은 압도적인데, 왜 경기력이 안 나오는가
아시안게임 역대 대표팀을 쭉 비교해봤을 때, 유럽파 숫자만 놓고 보면 이번이 단연 가장 많습니다. 배준호, 양민혁, 박승수, 이연주를 포함해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아홉 명이나 됩니다. 비교하자면 일본은 유럽파가 네 명, 이란은 한 명, 우즈베키스탄은 아예 없습니다. 선수풀 자체가 압도적으로 좋다는 건 팩트입니다.
그런데 이 선수들이 다 나와도 사우디 전지훈련에서 두 경기 합계 0대 6으로 졌고, 판다컵에서는 중국에 0대 1로 패했습니다. 올해 키르기스스탄에게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졌고, U23 아시안컵에서는 결승 진출조차 실패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유효 슈팅이 단 한 개였고, 일본과의 준결승 전반에는 우리가 슈팅 하나 날릴 동안 일본이 열 개를 때렸습니다.
개인 기량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에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뭉쳐서 경기를 치른 시간 자체가 너무 부족했다는 겁니다. 최종 명단이 발표된 건 7월이었지만, 해외파들이 실제로 합류한 건 9월이 넘어서였습니다. 평가전은 없고 바로 조별리그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조직력 공백이 생긴 진짜 이유
스쿼드(squad)란 팀이 실제 경기에 동원할 수 있는 전체 선수단을 가리킵니다. 이번 대표팀의 스쿼드는 화려하지만, 정작 팀 빌딩(team building), 즉 선수들이 서로의 움직임을 익히고 전술을 공유하는 과정이 사실상 생략된 상태입니다.
왜 이렇게 됐냐 하면, 출발 자체가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2024년 4월 황선홍 감독이 파리 올림픽 진출 실패 후 물러났는데, 이후 U23 대표팀 감독 자리가 무려 1년 넘게 공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협회 내부 일정과 회장 선거가 맞물리면서 생긴 공백이었습니다. 이민성 감독이 부임한 건 2025년 5월 27일입니다. 아시안게임이 코앞인데 감독이 선수단 파악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민성 감독이 지향하는 전술은 전방 압박(high press)입니다. 전방 압박이란 상대 진영에서부터 선수들이 집단적으로 달라붙어 볼을 빼앗는 수비 방식으로, 상대의 빌드업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대전 감독 시절 이 압박 하나만큼은 인상적이었고, 당시 전문가들도 리버풀의 스타일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술은 조직력이 생명입니다. 한 명이라도 타이밍을 놓치면 뒤에 큰 공간이 열리고, 체력만 빠지는 최악의 결과가 나옵니다.
실제로 최근 경기들을 보면 앞에서는 압박을 걸지만 상대가 한 번 빠져나가면 중원이 무너지고 수비 라인이 어정쩡하게 남는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이건 전술이 나빠서라기보다, 그 전술을 소화할 조직력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는 쪽이 더 정확한 진단입니다.
지금 대표팀이 처한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황선홍 감독 사퇴 후 1년 이상 감독직 공석으로 팀 빌딩 자체가 중단됨
- 이민성 감독 부임 이후에도 선수 선발 과정에서 시간 대부분을 소진
- 최종 명단 발표 후 해외파 합류까지 시간이 부족해 평가전 없이 본선 직행
- 와일드카드 세 명 추가로 조직력을 다시 처음부터 맞춰야 하는 상황
- 이민성 감독의 전방 압박 전술은 조직력이 전제 조건인데 현재 그것이 가장 취약함
와일드카드 세 명이 약점을 채울 수 있는가
와일드카드(wildcard)란 U23 이하 연령 제한이 있는 대회에서 나이 제한을 초과한 선수를 예외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아시안게임은 팀당 세 명까지 허용하며, 이번 대표팀은 양현준, 엄지성, 이기혁을 선택했습니다.
이 세 명을 보면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이름값 좋은 선수 데려온 거 아닌가?"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구성이 꽤 영리합니다. 앞서 말한 대표팀의 두 가지 약점, 즉 상대가 내려앉을 때의 공격 해법과 후방 빌드업 불안을 각각 커버하는 구성이기 때문입니다.
양현준과 엄지성은 측면에서 1대 1로 상대를 돌파할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상대가 내려앉아 공간이 없어도 개인 기량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이 두 선수가 측면 조커로 흐름을 바꾼 장면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기혁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후방 빌드업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상대 압박이 들어왔을 때 볼을 안전하게 처리하고 방향을 전환해주는 역할인데, 바로 지금 대표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포지션입니다.
세 선수 모두 월드컵 경험자라는 점도 토너먼트에서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험에서 오는 안정감은 특히 경기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빛을 발합니다. 0대 1로 끌려가거나 연장 상황처럼 팀이 흔들릴 때, 큰 무대 경험이 많은 선수가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다만 이 와일드카드 효과도 결국 팀에 녹아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관건입니다. 명단 확정 후 실제 합류 시점을 감안하면 이 세 명이 팀과 호흡을 맞출 시간도 사실상 며칠밖에 안 됩니다. 개인 능력이 좋아도 팀 전술 안에서 역할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 오히려 혼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금메달 가능성이 있는 이유
불안한 요소가 많다고 우승 가능성이 낮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아시안게임이라는 대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한국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입니다.
첫 번째는 동기부여(motivation)의 차이입니다. 동기부여란 선수가 경기에 임하는 심리적 에너지의 강도를 뜻하는데, 아시안게임에서만큼은 한국 선수들의 동기부여 수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금메달을 따야만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이건 커리어의 존속 여부가 걸린 문제입니다. 배준호, 양민혁, 양현준, 엄지성 모두 앞으로 유럽에서 더 큰 무대를 노리는 선수들입니다. 2018년 손흥민이 이미 토트넘 주전이었음에도 아시안게임에 합류해 이를 악물고 뛴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반면 일본과 우즈베키스탄은 2년 뒤 LA 올림픽을 바라보며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성격이 강합니다. 단기 토너먼트에서 이 간절함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대진 구성입니다. 이번 대회는 15개국이 참가하는데, 한국이 속한 D조는 유일하게 세 팀(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으로 구성됩니다. 다른 조는 네 팀이라 조별리그를 세 경기 치러야 하지만 한국은 두 경기만 하면 됩니다. 결승까지 간다고 해도 한국은 다섯 경기, 다른 팀은 여섯 경기입니다. 체력 소모 측면에서 이 한 경기의 차이는 이민성 감독처럼 활동량 기반의 전방 압박을 구사하는 팀에게 특히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핵심 선수에게 휴식을 줄 여유도 생깁니다.
세 번째는 역사입니다. 2014, 2018, 2022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3연속 금메달을 땄습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한국 축구는 아시안게임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보유한 나라 중 하나로, 단기 토너먼트에서 조직적으로 뭉치는 경험 자체가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어느 대회도 시작 전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2018년에는 김학범 감독의 인맥 선발 논란이 있었고, 조별리그에서 말레이시아에 충격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승에서 일본을 꺾었습니다. 2022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회 전까지 황선홍 감독에 대한 불안감이 컸지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전승 우승이었습니다.
또한 FIFA가 집계하는 아시아 국가별 랭킹 추이를 봐도, 한국은 최근 아시아 강팀들의 전력이 상향평준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개인의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선수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번 아시안게임 축구 대표팀에서 유럽파가 많은 게 왜 문제가 되나요?
A. 유럽파 선수들은 소속 클럽 일정 때문에 합류 시점이 늦어집니다. 최종 명단이 7월에 나왔지만 이들이 실제로 모인 건 9월 이후였습니다. 평가전 없이 바로 본선을 치러야 해서 조직력을 맞출 시간 자체가 없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선수 개개인이 뛰어나도 팀 전술이 공유되지 않으면 경기력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Q.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야 병역 혜택을 받는 건 맞나요?
A. 맞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병역법상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입니다. 은메달로는 혜택이 없고, 반드시 금메달이어야 합니다.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는 군 복무 대신 해당 분야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라 커리어 전반에 걸쳐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Q. 이민성 감독의 전방 압박 전술이 왜 지금 대표팀에는 맞지 않는다는 건가요?
A. 전방 압박은 11명이 정확한 타이밍에 함께 움직여야 효과가 납니다. 한 명이라도 늦으면 오히려 후방에 공간이 뚫립니다. 지금 대표팀은 이 약속된 움직임을 함께 훈련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는 압박을 걸지만 뚫리면 중원과 수비 라인이 모두 노출되는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Q. 엔스 카스트로프를 왜 명단에서 제외했는지 공식 설명이 있었나요?
A. 대표팀 관계자는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과 의사소통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엔스는 이미 성인 월드컵 대표팀 경험자이고, 이민성 감독이 직접 독일까지 찾아가 면담했을 만큼 처음에는 선발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제외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아 팬들의 불신이 커진 부분입니다.
Q. 한국이 아시안게임 4연속 금메달을 달성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A. 조직력 부재와 최근 성적 저조, 감독 신뢰도 문제는 분명한 약점입니다. 그러나 압도적인 선수 개인 기량, 병역 혜택이 걸린 강한 동기부여, 유리한 대진, 그리고 아시안게임에서 쌓아온 경험이 반대편에 놓입니다. 우승 가능성은 있지만 손쉬운 우승은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이민성 감독이 단기간에 팀을 얼마나 하나로 묶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이번 아시안게임은 선수들의 시험대가 아닙니다. 선수들은 이미 증명이 끝났습니다. 이민성 감독이 짧은 시간 안에 이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 수 있느냐, 그리고 플랜 A가 통하지 않을 때 다른 답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진짜 질문입니다. 저는 아시안게임 특유의 간절함이 결국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보지만, 이번만큼은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